칼럼 목차

할 일과 추진 과제

학교는 과업 중심 사고를 훈련하는 곳이다

“이게 시험에 나오나요?”

숙제를 끝내야 밖에 나가 놀 수 있다.

그래서인지 교사들이 chatGPT에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숙제와 에세이라는 과업에 들이는 노력이란 균형이 교묘하게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에세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을 들이는 노력이 본질이었다.

학교가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건, 대부분의 산업 노동이 그렇기 때문이다. 소규모 수공업, 조각보 수선, 많은 프리랜서 일자리도 결국은 과업의 연속이다.

기술이 과업을 더 빨리 끝낼 수 있게 해준다면, 그 절약한 시간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남은 시간은 자유다. (물론, 상사가 다시 과업량을 조정하기 전까지만.)

하지만 중요한 일은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에도 여러 과업이 따라오지만, 모든 과업이 결국 더 크고 무한하게 느껴지는 무언가로 귀결된다.

맥도날드에서 손님 한 명을 응대하는 건 과업이지만, 맥도날드 브랜드를 전 세계 체인으로 만드는 건 프로젝트다.

스파게티를 요리하는 건 과업이고, 진짜 환대를 만드는 건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란, 가끔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에 도전하는 일이다. 그리고 프로젝트에는 경쟁자가 많다. 만약 어떤 과업을 빨리 끝냈다면, 그 생산성으로 바로 고객을 위한 새로운 일에 뛰어드는 게 맞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속도를 내고 있을 테니.

누군가는 말한다. “이 돈 받고 더 신경 쓸 필요까진 없어.” 그들의 진짜 뜻은, 경영자가 내게 과업만을 주문할 뿐이고, 과업 이상의 일은 거래 조건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정할 때는 그 계약이 더 깊고 인간적인 차원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노력의 대가로 돈을 받는 차원이 아니라는 얘기다.

예술도, 관계도, 커뮤니티도 모두 프로젝트다

예술은 프로젝트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공동체를 만들고, 상담을 하는 것—이 모든 것은 프로젝트다. 우리가 과업이 아니라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커다란 기계 속의 작은 부품이 아니다. 우리는 방향을 가진 기여자, 서로 동의한 아젠다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된다.

형편없는 상사는 이 두 가지를 다 원한다. 주도권, 권한, 보상에는 인색하고, 노력에는 끝없이 욕심을 부린다. 하지만 현명한 리더는 안다. 우리가 정말 바라는 건, 자신의 기여가 보이고, 의미 있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기회라는 사실을 말이다.

가슴 뛰는 프로젝트를 찾아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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