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평가에 익숙해지는 건 생각보다 너무 쉽다
고객, 클라이언트, 거래처, 동료들—우리는 그들이 우리 노력을 알아주고, 인정해주길 바란다. 누군가의 감사와 인정에 신경을 기울일수록, 대개 그건 늘 부족하다는 사실만 더 뚜렷해진다.
과잉 칭찬을 받을 일은 거의 없다
대조적으로, 과잉으로 인정받는 경험은 아주 드물다. 자격 이상으로 칭찬을 듣고,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의심받기보단 오히려 혜택을 받는다. 이런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우리가 얼마나 인정받길 원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유명인들도 과잉 칭찬에 중독된다
락 스타나 유명인들이 과잉 칭찬에 매달리기 시작하면, 그 기대는 왜곡되고 결국 해롭기만 하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박수를 받고, 정당하지 않은 보답을 받는 것. 이게 바로 ‘디바’라는 꼬리표가 붙는 과정이고, 이건 소수의 유명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인정받는 일에 너무 익숙해지기는 쉽다.
인정에 의존하면 일은 더 어려워진다
만약 고객이 미워지고, 파트너와의 관계도 억지로 이어가며, 고객에게서 더 많은 주목을 요구하게 된다면, 당신은 이미 인정이라는 감정에 기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인정받을 만한가? 어떻게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이 끝없는 순환 고리로 우리를 끌고 간다.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 과연 어디에 닿을 수 있을까.
인정은 애착이며, 애착은 우리의 시야를 흐린다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집착이다. 애착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지만, 내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쏟는 관심이다. 애착은 우리 시야와 집중을 앗아가고, 무엇보다도 ‘아무리 받아도 부족한’ 악순환만 불러온다. 인정은 진짜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열심히 해온 결과로 생기는 부산물쯤으로 보는 게 옳다. 우리는 그저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이 일을 한다. 누군가 인정해준다면 기쁘지만, 그건 전적으로 내 영역 밖의 일이다.
외부로부터의 인정에서 자유로워질 때 새로운 길이 열린다
외부의 인정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우리의 작업을 세상에 어떻게, 어디에 선보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매일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시간과 주의력, 노력을 어디에 쏟을지 새롭게 선택하는 기회를 얻는다. 만약 내 작업을 옛날에는 좋아해줬던 커뮤니티가 이제는 내가 바라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 정보는 내 일을 새롭게 배분하는 데 쓸 수 있다. 인정이 오지 않더라도, “고맙습니다”라고 응답하면 된다. 그 경험에서 배운 게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내게 뭔가 빚진 건 결코 아니니, 그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나와 춤추지 않는다면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선택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창작자 역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과잉으로 자신을 칭송하는 관객에게 매인 채, 빚진 기분에 사로잡힌 창작자도 자신이 지향할 작업과 그 작업을 선보일 대상을 새로 결정할 수 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열광적인 관중에게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지만, 취향이 뚜렷한 소수의 작은 모임에서 깊이 있게 만나는 길도 있다.
맞지 않는 상대라면 작업의 대상을 바꿔도 된다
나를 충분히 알아주지 않는 거래처나 파트너, 고객 등에게 실망하고 불만만 쌓는 대신, 우리는 더 나은 작업, 새로운 작업 혹은 전혀 다른 대상에게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 괜한 불만에 에너지를 쓰는 건 별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받아야 할 것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기여에 집중할 때 우리는 다시 제대로 일할 수 있다
무엇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집착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에 집중할 때, 우리는 진짜 우리 일에 다시 몰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