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나는 오스틴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다. 정말이지, 이건… 어마어마하게 가파르다.
고개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언덕 끝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아, 아무래도 오늘은 일찍 포기해야겠다.”
‘마지막 구간은 그냥 건너뛰면 돼. 이 정도면 충분히 탔잖아. 아무도 모를 거야.’
머리를 저으며, 이런 생각은 애써 무시하고 계속 페달을 밟는다.
마침내 언덕 끝에 도달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잠시 멈추어, 크게 숨을 들이쉰다.
몇 초가 흐른다…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자전거에 올라 또 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고통이다.
포기하라는 뇌의 속삭임을 뚫고 나아가는 것, 그게 바로 고통을 견디는 일이다.
나는 몇 백만 달러짜리 사업을 여러 번 일구고,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이 ‘고통’을 연습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결코 자랑하려는 말이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이거다.
고통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일수록,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프로페셔널한 고통이란?
그렇다면 ‘프로페셔널한 고통’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내 경우에는 이랬다.
- 경쟁사에 의해 소송을 당하고, 같은 날 페이스북에서 계정까지 정지당했다(끔찍했다!)
- 30살까지 돈을 아끼려고 바닥에 자거나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
- 앱수모(AppSumo)로 2년간은 수익 $0, 그리고 그 다음 해엔 $42,000 정도만 벌었다.
- 크로아티아에서 휴가를 보내면서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영업전화를 돌리고 고객 지원까지 했다.
그 당시엔 정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모든 고통을 겪은 게 오히려 고맙다. 왜냐면, 힘들었지만 적어도 내가 원해서 감내한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언제고 찾아온다.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을 위해 고통을 감당할 건지 찾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무언가를 알리고 홍보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한다. 그래서 2000년부터 지금까지 블로그를 계속 해오고 있다.
모든 게 장밋빛이냐고? 절대 아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온통 고생투성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성장을 위한 선택지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최근 앱수모 사업을 하면서 어떤 부분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다(파트너 계약 종료, 팀원 이탈, 인사 문제, 사이트 운영 등등). 내 본능적인 반응은 고통을 피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이건 우리 모두 지니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이다.
우리는 쾌락을 향해 달려가고, 고통은 본능적으로 피한다.
그런데 혹시 이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어떨까?
내가 몸을 돌려 고통에 맞서는 바로 그 순간, 가장 크게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이걸 ‘임계점(The Threshold)’이라고 부른다. 고통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그 지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리더십 팀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을 함께 찾아보고, 변화의 과정에서는 인내심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에게 ‘고통에 맞서는 일’은 어떤 모습일까?
예를 들어 이런 것이 될 수 있다.
- 창업 준비를 위해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일어나기
- 밤에 넷플릭스를 끊고 대신 콘텐츠를 만들기
- 금요일 밤 맥주를 포기하고 고객과 대화하기
- 배달음식을 줄이고 사업에 투자하기
물론, 나라고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나 역시 여전히 본능적으로 고통을 외면하고 싶고,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내가 고통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준 방법 몇 가지를 공유한다.
첫째, 고통(어느 정도까지는)이 좋은 것임을 받아들이기.
지금 고생 → 나중에 성공
둘째,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코치나 친구를 곁에 두기.
누구나 알 것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솔직하게 말해줄 그런 사람들 말이다.
셋째, 고통을 의도적으로 연습해보기.
이걸 습관으로 만드는 거다.
- 계단 이용하기
- 아침 일찍 일어나기
- 헬스장 가기
스스로 원해서 겪는 작은 고통을 쌓아두면, 원하지 않는 진짜 시련이 닥쳤을 때 훨씬 단단하게 맞설 수 있다.
늘 응원한다,
노아